문화 비평

월든 호숫가에서 깨달음을 낚다

게시자: 성우넷, 2019. 3. 2. 오전 4:59   [ 2019. 3. 27. 오후 10:26에 업데이트됨 ]


소로는 생전에 명성을 얻거나 부를 탐한 적이 없다. 그는 하버드 대학을 나와서도 월든 호숫가에서 통나무집을 짓고 농사지은 일을 가장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겼다. 그는 자연을 소유하지 않고 그것의 일부로 살아가고자 했다.

이와 달리 현대인들은 숲을 가로지르는 길을 내고 그 주변을 개발하는 데에만 급급해왔다. 소로가 말한 숲의 경제와는 정반대의 길로 걸어온 것이다. 숲은 그대로 두어도 생명을 먹여 살리는 보배로운 장소지만, 인간이 그곳의 나무를 깎아내고 동물들을 내몰면서 온전한 숲은 대부분 사라지게 되었다.

그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야생사과의 향과 맛을 으뜸으로 꼽았다. 야생에서 사과나무가 자라는 동안 햇살, 바람, 흙 등이 그 지역만의 독특한 맛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 맛은 사람들이 제한된 조건 속에서 만들어낸 획일화된 사과맛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인류가 숲을 밀어내며 잃어버린 것은 야생사과뿐만이 아니다. 꿀벌의 터전이 사라지자 열매를 꽃피울 길이 없어짐을 걱정하게 되었고, 먼 미래에는 사과 대신 벌레를 먹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소로는 무소유와 자연 친화를 추구하면서 국가주의의 폐해를 경계했다. 국가가 개인이 추구하는 다양성을 무시하고 특정하고 옳지 못한 일을 하기 위해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반대했던 것이다. 당시 미국이 자연을 훼손하거나 약소국 식민지화를 위해 전쟁에 몰두할 즈음, 소로는 인두세를 거부하며 불복종의 권리를 행사했다.

그는 이러한 생각들을 마을 사람들에게 전하였으며, 종종 글로 남겼다. 그래서 오늘날의 우리들도 그의 생각에 공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당시 자신의 글로 유명세를 얻으려 하지도 않았다. 단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했다.

이를테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걸어서 가는 것과 기차를 이용하는 것 중 무엇이 값싼 것인지 견주어봤을 때, 그는 걷는 것이라고 단호히 말하였다. 기차 타는 비용을 벌기 위해서는 오랜 학창 시절을 거쳐야 하고, 그렇게 쌓은 역량을 바탕으로 남 밑에서 노동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걷는 것은 길어도 한 달이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걷는 동안 여유 있게 주변을 둘러보며 많은 생각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그동안 우리가 추구했던 삶이 정말 옳은 길이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자연에서 주어진 것들을 공정하게 나누는 일보다, 가진 자들을 위해 노동하며 전체가 획일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을 과연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월든 호수의 깊이를 재기 위해 실에 돌을 매달았다.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어쩌면 우리는 그런 방법조차 떠올리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모른다. 또 그는 낚시를 한 후 물고기들을 다시 살려주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들의 생명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다른 생명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소로가 눈감았던 날,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미소 지었다고 한다. 비록 45세의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천국, ‘월든을 바라보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새들이 아침을 노래하고 햇살이 콩깍지를 빚어내던 월든 호숫가에서, 그는 한 소나무가 나무꾼에 의해 죽어버린 것을 깊이 슬퍼했다. 다람쥐의 집, 새들의 보금자리가 그의 곁에서 사라질 때, 그도 그것들과 함께 그곳을 떠났다. 


이미지 gutenberg.org

지미의 마을 회관

게시자: 성우넷, 2019. 2. 17. 오전 6:12   [ 2019. 3. 24. 오전 6:04에 업데이트됨 ]


  아일랜드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적 시련을 가지고 있다. 12세기부터 무려 700여년 동안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았고, 대기근으로 인해 1845년부터 1911년 사이 절반 수준인 440만 명으로 인구가 감소하였다. 곧이어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아일랜드에서도 내전이 일어나 결국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남아일랜드 지역의 주만 통합하여 공화국이 수립된다.(1922년) 그러나 아일랜드의 초기 정부는 주민들에게 진정한 의미에서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다. 정부가 귀족들의 토지소유권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중세 이래 대대로 같은 땅에서 소작농으로 살아왔던 농민들의 권리는 무시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조선 말기에 백성을 수탈하여 부를 축적한 양반과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재산권을 몰수하지 못해 아직까지도 그들의 자본에 의해 국정이 좌우되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유사하다. 부정한 세력들이 정권을 잡고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 방해되는 세력을 이적 단체로 몰아간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아일랜드에서도 독립 이후 귀족의 권리 수호에 걸림돌이 되는 주요 인사들이나 단체들을 빨갱이로 몰아 추방하거나 탄압한 사례가 많았다. 그중 ‘지미’라는 인물을 모티브로 하여, 켄 로치 감독의 묵직한 시선으로 <지미의 마을 회관(Jimmy's Hall)>이라는 영화가 제작되었다.



  당시 지미는 마을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뜻을 함께하는 청년들과 힘을 모아 마을 회관을 건립한다. 그곳에서 가르치던 과목은 음악, 무용, 문학, 미술, 체육 등이었다. 이러한 교육 활동은 정서적으로 속박된 마을 사람에게 해방감을 주는 동시에 따뜻한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깨치게 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두려웠던 정부와 교회 측은 회관을 향해 총을 쏘는 것도 모자라 사람들이 없는 한밤중에 그곳을 모두 불태워 버린다. 결국 지미는 정당한 재판 절차도 없이 미국으로 강제 추방된다. 그가 마을을 떠나는 날,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나와 미소로 그를 배웅한다. 그렇게 영화의 막이 내린다. 



  다음은 이 영화에서 무척 인상 깊었던 대사로, 마을 회관에서의 모임을 탄압하던 신부에게 지미가 고해성사한 내용이다.


  “제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고해한지 25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위선자 때문에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성직자인데도 거짓을 일삼으며 증오를 선동하고, 총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위협하도록 부추깁니다. 교만의 죄도 저질렀는지 궁금합니다. 자신이 지혜의 샘이나 되는 듯 행동하지만 그저 무지하고 미신을 믿을 뿐입니다. 우리의 가장 큰 보물인 상상력과 즐거운 마음을 지옥이라 운운하며 파괴하려 하고, 지루한 삶을 강요하며 우리의 정신을 죽이려 하고, 그들이 통제하지 못하는 건 무엇이든 죽이려고 합니다. 그리고 신부님, (그의) 신성 모독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가슴 속에 사랑보다 증오를 더 많이 담고 있습니다.”



  지미가 추방되는 날, 그를 ‘빨갱이’라고 농락하던 귀족들을 향해 위의 고해성사를 들었던 신부가 이 말을 던진다.


  “조용히 하고 존경심을 보이게! 자네들보다 용기 있고 품위 있는 사람일세.”



인류는 어떻게 지구 상에 살아남았을까

게시자: 성우넷, 2019. 2. 17. 오전 5:43   [ 2019. 3. 27. 오후 10:37에 업데이트됨 ]


우리 인간이 어떻게 진화하여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그 기원을 살펴본 학자들이 있다. 그 중 리차드 리키와 로저 레윈의 저서 오리진을 바탕으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미래를 푸는 열쇠를 찾아보고자 한다.


다크 교수로렌쯔 박사 및 그 밖의 극작가들은 인간이 매우 공격적이라는 설을 제시한다즉 인간도 동물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그 본능을 표출한다는 것이다이러한 가설에 대한 근거로 인간은 동물뿐 아니라 인간 상호간에도 살육을 저지르고 먹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예로 든다이러한 판단에 의한다면 우리가 사회의 악을 바로잡으려고 만든 제도적 장치는 모두 무의미해진다어쩌면 그 또한 욕망 충족의 수단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인간이 동물과 같은 생태계에 놓여있고 육식을 즐기는 것이 사실이지만우리가 동물과 다르게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회적 동물이라는 특성 때문이다그런데 인간의 역사가 사랑보다 투쟁의 산물이 된 이유는 농경 생활로 인해 재산 축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씨족 중심의 집단 내에서 상대적으로 힘이 강한 자는 무기를 만들어 어떻게 해서든 재산 ─ 식량 등의 자원보금자리생식 장소 을 보호해야만 했다대개는 나이가 많고 경험이 풍부한 자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족 간의 연맹을 통하여 지금의 국가가 생겨났다.




만약 인간에게 같은 종을 죽이려는 선천적 본능이 있었다면 국가 발생 이전에 자멸했겠지만그런 본능이 있다고 해도 인간은 그런 사태가 오기 전에 대비할 수 있는 지능을 가지고 있다동물과는 달리 절제하며공포를 회피하는 성향과 능력이 있다.


앞서 말한 식인이라는 것도 배를 채우기 위한 행위로 보기 힘들다부족 간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면 상대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인육을 먹는 행위를 보였고부족 내 구성원이 죽었을 때에도 망자를 위한 제의 절차에서 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근친상간의 문제이다만약 인간이 근친상간을 해왔다면 지금처럼 진화하지 못했을 것이다동물들의 사회에서도 근친상간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경우가 목격되고 있듯 인간은 어느 시점에서부터 족외혼 규칙을 정했기 때문에 고도로 진화한 것이다.


그리고 인류사에서 두드러지게 발견되는 것 중 하나가 ‘성차별의 요소이다이러한 결과는 남성들이 의도적으로 여성을 지배하기 위해 제도와 문화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단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유전적인 특징에 기초하여 각자의 성 역할을 확정 지어 왔다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지배의 정당화를 위한 논리로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고도의 물질문명이 도래하면서 그 윤택함만큼의 투쟁이 만연해있다부당한 인종 차별은 여전하고성별에 따라 각자의 불이익도 존재한다인류의 과학기술이 나날이 발전될수록 멸망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복잡해졌다무기의 강도도 가공할 만한 수준이 되어 자국을 보호하려는 수준을 넘어섰다자칫 국가 간의 감정싸움으로 치닫게 되면 매우 위험해진다.


인간이 선천적인 공격성이 없다고 해도 집단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하기 때문에 지구 상 생명에게 돌이킬 수 없는 대량 파괴를 자행할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이미 그것은 수차례 벌어진 전쟁을 통해 증명되었다전쟁의 목적을 여러 가지 사유로 미화하기는 하나 근본적으로 수많은 인류를 학살하는 것이다. 사실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주장하지 않는다면 모든 전쟁의 정당성은 허구나 다름없다.


지구 상에 남은 자원은 유한한 데 비해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문명은 끊임없이 발달하여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인류에게 최악의 자연재해나 질병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어쩌면 인류는 먼저 남겨진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부득이 전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그러나 앞으로 인류는 역사를 돌이켜 보면서 전쟁이 공멸의 지름길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일부 학자들은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에 인류가 자멸할 것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이 지구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발전해나가는 방향을 선택한다면 언젠가는 닥칠 인류의 위기를 늦출 수는 있다한 지도자의 빈약한 상상력과 어리석은 판단은 위험하다. 어떤 문제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좀 더 우리의 미래를 날카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인류는 협동적인 동물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해야 한다. 이처럼 인간과 인류사를 잘 이해한다면 우리는 미래를 보다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진 williamchoOxfam International

교사가 가르쳐주지 않는 위대한 여성들

게시자: 허성우, 2016. 7. 3. 오전 12:23   [ 성우넷에 의해 업데이트됨(2019. 2. 14. 오전 12:35) ]



조너선 코졸의 저서 교사로 산다는 것을 통해, 미국의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는 위대한 여성들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대부분의 미국 교과서에서는 훌륭하거나 용감한 여성들을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들은 유명한 남성과 결혼하는 행운으로 성공한 것처럼 그려진다. 영부인들에 대한 사례가 주로 그러하다. 특히 여성들이 가진 신념들은 표백되고 생략되어 언급된다.

자기의 힘으로 업적을 이룬 인물은 나라를 위해 일한 재봉사 베치 로스 조지 워싱턴의 주문을 받아 미국 국기를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진 재봉사 가 유일하다. 즉 교과서 편집자들은 가사의 영역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대표적 인물로 그녀를 선택하였다.

흑인 지도자 해리엇 티브먼 노예제도 폐지론자. 인도주의자. 여성운동가 을 비롯하여, 독자적 행동으로 의미 있는 업적을 남긴 애비게일 애덤스 미국 2대 대통령 존 애덤스의 부인으로, 여성인권과 노예해방 등을 주장하며 당대 미국 정치 및 행정에 큰 영향을 끼침 는 명목상 언급되곤 한다.

미국 혁명 후 2세기가 지났는데도 이러한 현상이 변하지 않았다. 지난 백 년간 주목할 만한 여성들 대다수는 공립학교에서 거의 거명조차 되지 않았으며, 완전히 무시되는 수준이다. 이는 아마도 그녀들이 남성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국가의 기만과 대기업의 권력을 열정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물을 살펴보면, 수전 B. 앤서니는 미국의 여성 참정권을 이끌어낸 인권 운동가였다. 에마 골드먼은 20세기 초반 북미 및 유럽에서 아나키스트 철학을 발전시키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도로시 데이는 기독교인이 되는 최선의 방법은 가장 궁핍하고 굶주린 사람들 편에 서서 그리스도의 이상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독실한 종교인이었다. 그녀는 시위에 참여해 몇 달 동안 단식을 하기도 했으며, 혁명을 보기 위해 직접 쿠바에 갔다. 나이 70세가 되어서도 캘리포니아 농장의 이주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한 권리를 인정해달라고 파업을 벌일 때 라인에 서서 노동자들도 함께 시위했다. 결국 그녀는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또한 50년 가까이 더 가톨릭 워커라는 월간지를 발행하였는데, 지금까지도 한 부에 1페니에 판매된다. 당시의 잡지에는 정치 문제, 일기, 그녀가 데리고 온 부랑자들에 관한 단상들로 가득 차 있다. 그녀는 사회주의 이념을 무턱대고 비판하지 않았으며, 3세계의 혁명 투쟁을 옹호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립학교 교과서는 이러한 여성 영웅에 대해서도 수업시간에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억압받는 이들의 자유를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한 인물들을 다루느냐 그러지 않느냐는 사실 학교의 남학생과 여학생들 사이의 관계 맺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치며, 이는 곧 여성의 권리로 연결되는데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는 이 문제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러한 여성 중에는 어린 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 있는데, 바로 헬렌 켈러다. 그녀는 눈과 귀가 멀었지만, 읽고 쓰고 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시련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되었다. 학생들은 대체로 헬렌 켈러에 대해 이 정도의 내용만 배운다. 그러나 정작 학생들이 알아야 할 것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투쟁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그것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나는 노동 착취가 일어나는 공장과 혼잡한 빈민가를 방문했다. 볼 수 없는 것은 냄새로 맡을 수 있었다. 내 손으로 만져보아 알 수 있었는데, 엄마가 근처 공장에서 기계를 돌보는 동안 발육이 늦어 왜소한 아이들이 동생들을 돌보고 있었다.’

이 사회는 개인주의, 정복, 착취를 기반으로 세워졌다. 이렇게 그릇된 기본 원칙을 기반으로 세워진 사회 질서는 틀림없이 모든 발전을 저해하게 될 것이다. 방적공장이나 탄광의 산출량이 건강하고 행복하고 자유로운 인간을 만드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우리 국민은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이름뿐이다. 우리가 투표한다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구별도 안 되는 비슷한 두 후보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일 뿐인데.’

만약 교사가 이 글을 벽에 걸린 헬렌 켈러의 사진 밑에 붙여 놓는다면 공립학교에서 해고가 될지도 모른다. 더구나 앞서 언급한 헬렌 켈러의 말보다 정녕 그녀가 몇 명의 유명 인사를 만난 것이 더 중요한 것처럼 그런 것들만 교과서에 기록해 놓았다. 도대체 왜 전자의 기록들은 언급되지 않는 것일까?

교과서에는 헬렌 켈러가 ‘(눈 없이) 보는 법을 배웠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정작 그녀가 무엇을 보았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또한 그녀가 말하는 법도 배웠다고 알려주지만, 그녀가 무엇을 말했는지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물론 교과서에 실린 헬렌 켈러의 내용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가 육체적 고통을 딛고 일어서 성공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교과서와 교사는 외면하고 있다.


만개한 벚나무 숲 아래

게시자: 허성우, 2016. 7. 3. 오전 12:20   [ 성우넷에 의해 업데이트됨(2019. 2. 14. 오전 12:35) ]



우리는 벚꽃나무를 마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흩날리는 꽃잎을 보며 전혀 달리 생각한 작가도 있었다. 그는 '사카구치 안고'인데, 일본 무뢰파 작가로서 전후 일본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봄이면 활짝 피는 벚꽃, 그 꽃나무 아래에 서서 소설 속 주인공은 핏빛 역사를 떠올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그 스스로도 한 여자를 품에 안기 위하여 전처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머리를 수집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처럼 잔인한 내면과 억누를 수 없는 욕망, 그 안에 주인공의 사랑은 존재하긴 했을까? 결국 그러한 모순이 폭발하게 되는 날, 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서 귀신인지 아내인지 모를 여인의 목을 조르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과 세상의 부조리를 파괴하려는 몸부림 같기도 했다.

 

이 해괴망측한 이야기는 아직도 유효하게 느껴진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것이 부조리를 감싸고 있으니까. 한때는 우리 국민들도 그들의 벚나무 아래에서 그러했을 테니까. 우리는 봄날 벚꽃을 보며 웃다가도, 그것이 지는 날에는 한없이 울적해질 것이다. 때로는 죽음을 불사하더라도 그 어떤 굴레로부터 아주 멀리 도망치고 싶을 테니까.


나를 아는 순간 시가 찾아온다

게시자: 허성우, 2016. 7. 3. 오전 12:17   [ 성우넷에 의해 업데이트됨(2019. 3. 27. 오후 11:07) ]



시는 무엇인가. 우리는 시라는 것을 마치 거대한 철학처럼 받아들인다그래서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만든 벽이라 생각한다하지만 시의 세계는 결코 나와 떨어져 있는 공간이 아니다시는 내 삶에서 얻은 감정과 지혜의 창고이다단지 우리는 그 문을 열지 못하고 늘 주저할 뿐이다.

 

우리는 호기심이 많다, 수많은 것들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을 알아차리면서 즐거워한다. 그 중 나 자신의 존재를 가장 궁금해한다. 하지만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가 없으면 나조차 나를 알 수 없는 괴리감에 빠지고 만다그렇게 되면 나라는 존재는 나의 의지로 인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기계의 부품처럼 외부 자극에 의해 살아가게 된다.

 

시는 내 마음의 얼굴이다나를 발견하기 위해 닫혀 있던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을 때 나를 꼭 닮은 시가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는 깊은 어둠 속에 숨어서 좀처럼 나를 드러내지 않는다자칫 남들이 나를 알게 될까 두려워하며, 자신의 존재를 세상의 가장 구석진 곳에다 몰아넣으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나를 보이지 않는 곳에 속박하려 하지 말고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 내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토로해보자. 내가 발견해낸 내 마음 속 풍경들을 하나씩 그려 나가자.

 

시의 진정한 맛이란 바로 여기에 있다내가 의도한 생각내가 하고 있는 마음의 일을 나의 눈으로 확인하고 그것을 아름답게 내보이는 것이다혼자만의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수단이자, 그것을 통해 동질감을 회복하고 보편적 인류애를 발굴해주는 것이 문학이요그 중에서도 시라고 하겠다.

 

또한 시는 소설과 달리 사실에 기반한다. 현실의 문제를 도외시하는 허구의 부산물이 아니요장식의 위한 화려한 소모품도 아니다시는 이슬처럼 맑은 생각에 뿌리를 둔 새싹이요, 일상 속 낱낱의 표현들이 응결된 열매이다. 그 알록달록한 생각들을 특정한 범주로 엮으면 한 권의 시집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시를 쓰기 위해서 가장 먼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질문해야 하며, 그 연후에 올바른 삶 내지는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시인으로 살아가야 한다그 길에서 우리는 자신이 왜 시를 쓰고 있는지 그리고 시를 쓰는 것이 자신은 물론 타인의 삶에도 얼마나 많은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사진 VinothChandar

자녀에게 책을 읽히기 전에 꼭 알아야 할 것들

게시자: 허성우, 2016. 7. 2. 오후 11:55   [ 성우넷에 의해 업데이트됨(2019. 3. 24. 오전 7:20) ]



프랑스의 사회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는, 소설이란 문제적 주인공을 통하여 타락한 세계에서 타락한 방법으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이야기라 하였다여기에서 문제적 주인공은 소설에서 다양한 갈등을 야기하는 인물이며타락한 세계는 소설 속의 배경을 말한다그리고 진정한 가치란 소설의 주제를 뜻한다.


따라서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에는주인공이 어떠한 갈등 속에서 얼마나 가치 있는 경험을 하는지에 주목해야 한다잘 알려진 소설을 읽으면서도 작가의 목소리를 느낄 수 없다면 이 세 가지 요소에 대한 인지결핍이 일어난 탓이다그럴 때에는 주인공과 그가 처한 상황을 내가 간접적으로 경험한다고 생각하고내가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모든 갈등을 풀어나가야 한다그래야만 소설 읽기를 즐길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유아의 듣기 능력 향상을 위해서도 고려해야할 사항이 있다유아는 인지능력이 사실상 어른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므로 어른들이 책을 읽어준다고 해서 내가 인지하는 것처럼 이야기의 요소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그렇기 때문에 낭독자의 읽기 지도가 꼭 필요하다.


대개 성공한 학습 경험은 또 다른 학습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오기 때문에어릴 때 독서를 즐길 줄 아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부모들은 자녀의 읽기나 듣기 태도를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강행하는 경우가 많다만약 그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에 여러분의 자녀에게는 학습 회피 성향만 길러질 수 있다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을 이해한다면 조기 학습에서부터 유아가 보이는 여러 가지 반응을 최대한 존중해 주고 올바르게 이끌어 주어야 한다.


동화나 소설은 거의 비슷한 맥락에서 세상의 모습을 허구적으로 담은 것이다그 내용이 아무리 환상에 가깝다 할지라도 앞서 말했던 가치는 진실에 닿아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야기를 읽은 후에 어떠한 감동을 얻는다여기서 진실이라는 것은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우리 삶에 보탬이 되는 주제의식을 말한다예를 들어 동화 속 주인공이 나쁜 짓만 하다가 나중에 그 잘못을 깨닫고 올바른 길로 들어섰다고 할 때그 줄거리들은 사실에 기인한 것이 아닐지라도 그 이야기가 주는 감동은 진실하게 느껴진다그런 것에서 우리는 문학적 가치나 보편적 진리를 끄집어낼 수 있다.


따라서 유아에게 어떠한 소설을 접하게 하였으면 반드시 그 이야기가 가지는 진실성을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그 방편으로 인물들의 성격다양한 사건들그것이 일어난 시공간적 배경들을 빌려와야 한다작품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지조차 모르면서 많은 책만 읽히는 것은 건전한 자아 형성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게다가 올바른 가치 판단을 하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인지한 요소들이 왜곡되는 역효과마저 생길 수 있다다시 말해 유아는 악인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그것이 잘못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제대로 된 설명이 따르지 않으면 오히려 부정적인 것들을 내면화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부모들은 교육열에 불 붙어서 유아들에게까지 자꾸만 뭔가를 읽히려고 한다그러나 그 이전에 사람을 보면 웃고 반기고 사랑을 느낄 줄 아는 심성을 먼저 길러주는 것이 좋다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의 태도에 대해 중얼거리며 짜증을 내기도 하고 간혹 부부가 말다툼도 하는 등 부정적인 요인들을 접하게 하면서도 공부를 시킬 때만은 내 아이가 최고가 될 것 같다는 망상에 젖는다.


세상의 이치도 그러하지만모든 학습 또한 사랑할 줄 아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배우는 것을 사랑하려면 배움을 주는 이에게도 사랑을 느껴야 하고나아가 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돌이켜 보면 우리가 이것저것 배우는 이유도 무엇이겠는가다 남을 사랑할 줄 알고 올바른 판단을 해내기 위해서가 아닌가이제 지식은 외우지 않아도 얼마든지 인터넷을 통해 건질 수 있다그러나 그러한 지식을 제대로 활용하여 자신의 삶에 쓸모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건전한 마음에서 비롯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그동안 살아온 인생이 선택의 연속이었고 그 때문에 내 삶이 이렇게 달라진 것이라면 당신의 자녀에게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는가그저 남들이 하는 것을 다 따라해 봤다고 내가 자녀에게 모든 기회를 마련해주었다고 착각하지 말자어떻게 이끌어주는 것이 제대로 된 교육인가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녀가 자신의 삶과 그 주변에 대해서 소중함을 깨닫고 타인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대개 유아기에 부모가 보여주고 들려준 것들에 의해 좌우된다그렇게 때문에 아이들에게 동화나 소설을 읽히게 된 동기아이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들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그러한 것들을 잘 고려하여 긍정적인 마음을 갖도록 이끌어준다면여러분의 보석 같은 자녀들은 점점 더 빛을 발할 것이다.


사진 cindiann

가르칠 수 있는 용기 - 두려움의 극복

게시자: 허성우, 2016. 7. 2. 오후 9:40   [ 성우넷에 의해 업데이트됨(2019. 3. 24. 오전 7:03) ]



아, 절연되지 않기를,

그 어떤 사소한 간격에 의해서도 

별들의 법칙으로부터 절연되지 않기를

내면 ㅡ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광대무변한 하늘,

새들이 힘차게 솟구치고

귀향의 바람으로 출렁거리는

저 높고 그윽한 하늘


릴케가 <귀향>에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곳은 내면의 공간이다. 내 바람들이 포용되는 이상향이다. 이에 대해 T. S. 엘리엇은 이렇게 썼다. “우리는 우리가 출발한 곳에 다시 도착한다. 그리하여 그곳을 처음 본 것처럼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우리의 삶은 늘 동그라미를 그린다. 그러나 그 삶이 동그라미 안에 놓일 수도 있고 그 바깥에 내팽개쳐질 수도 있다. 우리가 만약 타자와 절연되지 않는다면 쉽게 그 안에 놓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영혼은 늘 두렵다. 절연의 공포 속에서 ‘미움, 눈물, 욕망’ 따위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고뇌한다.

 

이것은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속한 직장과 동료들 그리고 학생들로부터 절연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사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몸부림치는 것이다.

 

그러나 교사가 주변으로부터 절연당하여 늘 두려움 속에 빠져 있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에게 돌아온다. 교사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학생이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마저 학생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내가 저 선생님을 믿어도 되는 것일까?’, ‘내가 가는 길이 올바른 곳인가?’, ‘아무도 내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수없이 되뇔 것이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엎드린 학생을 두고 파커는 생각했다. ‘저 학생은 정말 지옥에서 온 것일까’, ‘내가 부족해서 저 학생과 절연되지 않을 해답을 찾지 못한 것일까’ 파커의 이러한 고민은 교사라면 누구나가 겪게 되는 딜레마이다. 이러한 고민이 깊어질수록 교사와 학생은 자신감은 물론 자존감마저 잃게 될 것이고, 서로의 관계는 불신으로 인해 더욱 절연되고 말 것이 분명하다. 이에 대해 파커와 그의 워크숍에 참여한 교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것은 공포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 놓고 적절한 행동을 취한다면 돌파구가 열리게 된다. 그리고 내면의 동경에 귀를 기울이며 주변과 단절되지 않으려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 때때로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은 이처럼 간단한 것이다.”

 

“타자와의 만남에서 느끼는 어떤 공포는 우리가 그것을 잘 파악할 수만 있다면 우리를 살아남게 하고, 배우고 성장하게 한다. 낯선 것을 만날 때에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면서도 온몸에 열이 나 새롭게 열리는 것이다. ‘진정한 배움’이란 그런 것이다. 그것은 건전한 두려움이므로, 타자에 대한 공포를 넘어서서 존경으로 옮겨간다. 그런 것이 바탕이 되어야 훌륭한 교육이 가능해진다."

 

교사는 학부모와 학생을 이어주는 조정자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학생이 꿈과 절연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 스스로도 학생과 동료들로부터 절연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한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용기’이며, 그것을 가지는 방법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플 때마다 약을 삼키듯 두려움의 원인을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을 실천한다면 절연되지 않고 자신 있게 살아가는 자아를 곧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진 frank3.0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게시자: 허성우, 2016. 7. 2. 오후 9:35   [ 성우넷에 의해 업데이트됨(2019. 2. 14. 오전 12:36) ]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어 보면아직도 우리 사회는 그가 바랐던 그 무엇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소설 속의 내용에서는 하느님이 인간의 마음속에 계셨지만톨스토이가 살던 현실이나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도 하느님의 참다운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인간을 만든 ㅡ 창조한 ㅡ 것이 하느님이라는 것도 바로 인간이 사랑을 통해서 아이를 낳고 또 기르는 데에서 기인한다그리고 나아가 이웃과 함께 사랑을 나누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이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모든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고 있지만실상은 그것을 권세를 쌓는 데에만 이용하는 자들이 많다.


하느님의 말로 사람들을 유혹해 그 무엇을 얻고 있는 동안악인들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사랑을 망각하게 된다. 그처럼 실천하지 못하는 사랑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그래서 톨스토이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게 사랑인 반면우리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간다고 이야기한다.


그 사랑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내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그가 지혜로운 사람이다내 일이내 공부가내 유희가 사랑에서 기인하지 않는다면 결국 나는 그것들에 매달린 노예가 되고 만다그렇기에 아주 사소한 순간에도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단속해야 한다거기에서 내 언행이 비롯되고 또한 거기에서 사람과의 관계가 이루지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내 이웃을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그렇게 살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껏 한 번도 사람답게 살지 못한 것이다. 신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늘 나의 내면에 존재한다. 더 늦기 전에 내가 베풀 수 있는 참다운 사랑, 그 위대함을 깨달아야 한다.


※ 톨스토이는 '사랑'을 교회가 아닌 민중의 마음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진 Rjabinnik and Rounien

역사란 무엇인가

게시자: 허성우, 2016. 7. 2. 오후 9:32   [ 성우넷에 의해 업데이트됨(2019. 3. 24. 오전 6:23) ]



에드워드 카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였다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고 역사적 사실들은 과거의 일부인데역사 서술은 이 둘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따라서 우리에게 과거를 보는 새로운 눈이 길러져야 미래에 잠식되어 가는 현재의 어디쯤에 우리가 서 있는지 인식할 수 있다.


시대가 바뀌면 과거는 전과 달리 해석된다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저널리스트 스콧트는 사실은 신성하나 의견은 자유라고 하였다그러나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도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도 많다특히 보수와 진보의 정치관에 따라 과거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올바른 역사는 무엇일까우리가 교과서로 배운 역사는 과연 사실에 부합하는 것일까이에 대해 배러클루 교수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우리가 책에서 읽는 역사는 사실을 토대로 한 것이긴 하지만 엄격히 말한다면 결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일련의 인정된 판단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당 내지는 다수당의 관점에 따라 역사교과서의 내용은 수도 없이 바뀌는 것이다이러한 이유로 리튼 스트래치는 역사가가 무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무지는 단순화시키고 명확하게 추려내기 때문이다따라서 중요한 사실만 남게 되고 비역사적 사실들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역사에 있어 우연이라는 것은 사실을 굴절시킨다즉 역사 법칙은 우연의 자연 도태를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다톨스토이 역시 비합리적인 사건우리가 이해 못하는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숙명론에 의거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즉 우연이란 우리가 설명하지 못하는 사건들에 대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 시대의 우리 언론들은 너무도 우연에 근거하여 기사를 쓴다더 나아가 추측한 우연까지 만들어내고 있다우연이란 이해 못하는 사건뿐만 아니라 서술자가 그렇게 믿는 것이기도 하다그렇다면 그 행위는 그럴 법한 소설을 쓰는 것이나 다름없다주관주의에 빠지게 되면 온갖 허구의 살을 갖다 붙여 오히려 사실을 은폐하게 된다.


따라서 역사가에게는 부적절한 내용은 버리고 합리적인 해석 속에서 인과적으로 서술하는 능력이 필요하다이른바 클레오파트라의 코는 역사적 결과에 미친 영향을 떠나 합리적인 원인으로 기술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어떠한 인물의 언행을 기술할 때에도 합리적 인과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그리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다양한 원인 중 하나만을 채택해 합리적이라고 여기고 나머지는 모두 비합리적이라 치부하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전통이란 과거의 관습과 교훈을 미래에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과거의 기록이 보존되기 시작한 것도 미래 세대의 복지를 위함이다이렇듯 역사적 사고는 언제나 목적론적인 것이다.(호이징가즉 역사가는 라고 묻는 순간 어디로를 생각하게 된다즉 역사는 진보적인 것이고획득된 자산이며후세를 위한 의무이다.


괴테는 몰락에 처한 시대에는 모든 경향은 주관적인 것이 되며이와 반대로 모든 일이 새 시대를 향해서 결실을 맺는 시기에는 모든 경향이 객관적인 것이 된다고 하였다즉 성공한 미래에서는 역사가 옳은 방향으로 ─ 고등한 상태로건설적으로 ─ 나아갔다고 보는 것이다그렇게 때문에 승자는 전쟁을 승리의 발판으로 여기지만대량학살로 보지 않는다그러나 긴 시간 속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다그에 따라 역사도 끊임없이 움직일 것이다.

사진 ell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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