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가르쳐주지 않는 위대한 여성들

Post date: Jul 3, 2016 7:23:12 AM

조너선 코졸의 저서 『교사로 산다는 것』을 통해, 미국의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는 위대한 여성들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대부분의 미국 교과서에서는 훌륭하거나 용감한 여성들을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들은 유명한 남성과 결혼하는 행운으로 성공한 것처럼 그려진다. 영부인들에 대한 사례가 주로 그러하다. 특히 여성들이 가진 신념들은 표백되고 생략되어 언급된다.

자기의 힘으로 업적을 이룬 인물은 나라를 위해 일한 재봉사 베치 로스 ─ 조지 워싱턴의 주문을 받아 미국 국기를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진 재봉사 ─ 가 유일하다. 즉 교과서 편집자들은 ‘가사’의 영역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대표적 인물로 그녀를 선택하였다.

흑인 지도자 해리엇 티브먼 ─ 노예제도 폐지론자. 인도주의자. 여성운동가 ─을 비롯하여, 독자적 행동으로 의미 있는 업적을 남긴 애비게일 애덤스 ─ 미국 2대 대통령 존 애덤스의 부인으로, 여성인권과 노예해방 등을 주장하며 당대 미국 정치 및 행정에 큰 영향을 끼침 ─는 명목상 언급되곤 한다.

미국 혁명 후 2세기가 지났는데도 이러한 현상이 변하지 않았다. 지난 백 년간 주목할 만한 여성들 대다수는 공립학교에서 거의 거명조차 되지 않았으며, 완전히 무시되는 수준이다. 이는 아마도 그녀들이 남성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국가의 기만과 대기업의 권력을 열정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물을 살펴보면, 수전 B. 앤서니는 미국의 여성 참정권을 이끌어낸 인권 운동가였다. 에마 골드먼은 20세기 초반 북미 및 유럽에서 아나키스트 철학을 발전시키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도로시 데이는 기독교인이 되는 최선의 방법은 가장 궁핍하고 굶주린 사람들 편에 서서 그리스도의 이상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독실한 종교인이었다. 그녀는 시위에 참여해 몇 달 동안 단식을 하기도 했으며, 혁명을 보기 위해 직접 쿠바에 갔다. 나이 70세가 되어서도 캘리포니아 농장의 이주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한 권리를 인정해달라고 파업을 벌일 때 라인에 서서 노동자들도 함께 시위했다. 결국 그녀는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또한 50년 가까이 『더 가톨릭 워커』라는 월간지를 발행하였는데, 지금까지도 한 부에 1페니에 판매된다. 당시의 잡지에는 정치 문제, 일기, 그녀가 데리고 온 부랑자들에 관한 단상들로 가득 차 있다. 그녀는 사회주의 이념을 무턱대고 비판하지 않았으며, 제3세계의 혁명 투쟁을 옹호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립학교 교과서는 이러한 여성 영웅에 대해서도 수업시간에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억압받는 이들의 자유를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한 인물들을 다루느냐 그러지 않느냐는 사실 학교의 남학생과 여학생들 사이의 관계 맺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치며, 이는 곧 여성의 권리로 연결되는데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는 이 문제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러한 여성 중에는 어린 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 있는데, 바로 헬렌 켈러다. 그녀는 눈과 귀가 멀었지만, 읽고 쓰고 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시련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되었다. 학생들은 대체로 헬렌 켈러에 대해 이 정도의 내용만 배운다. 그러나 정작 학생들이 알아야 할 것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투쟁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그것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나는 노동 착취가 일어나는 공장과 혼잡한 빈민가를 방문했다. 볼 수 없는 것은 냄새로 맡을 수 있었다. 내 손으로 만져보아 알 수 있었는데, 엄마가 근처 공장에서 기계를 돌보는 동안 발육이 늦어 왜소한 아이들이 동생들을 돌보고 있었다.’

‘이 사회는 개인주의, 정복, 착취를 기반으로 세워졌다. 이렇게 그릇된 기본 원칙을 기반으로 세워진 사회 질서는 틀림없이 모든 발전을 저해하게 될 것이다. 방적공장이나 탄광의 산출량이 건강하고 행복하고 자유로운 인간을 만드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우리 국민은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이름뿐이다. 우리가 투표한다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구별도 안 되는 비슷한 두 후보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일 뿐인데.’

만약 교사가 이 글을 벽에 걸린 헬렌 켈러의 사진 밑에 붙여 놓는다면 공립학교에서 해고될지도 모른다. 더구나 앞서 언급한 헬렌 켈러의 말보다 정녕 그녀가 몇 명의 유명 인사를 만난 것이 더 중요한 것처럼 그런 것들만 교과서에 기록해 놓았다. 도대체 왜 전자의 기록들은 언급되지 않는 것일까?

교과서에는 헬렌 켈러가 ‘(눈 없이) 보는 법’을 배웠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정작 그녀가 무엇을 보았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또한 그녀가 ‘말하는 법’도 배웠다고 알려주지만, 그녀가 무엇을 말했는지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물론 교과서에 실린 헬렌 켈러의 내용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가 육체적 고통을 딛고 일어서 성공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교과서와 교사는 외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