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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빌려드립니다

게시자: 허성우, 2016. 2. 3. 오전 4:15   [ 성우넷에 의해 업데이트됨(2018. 4. 22. 오후 6:44) ]




<꿈의 해석>으로 널리 알려진 프로이트는 꿈속에 인간의 무의식이 숨어있다고 말하였다. 이제 그것을 의심하는 이도 많지 않다. 그의 주장은 대부분의 대학에서 가르치는 정규·교양 과목이 되었다. 무질서에 질서가 존재하듯 무의식속에도 의식의 그늘이 존재한다. 프로이트가 탐구한 인간의 무의식은 욕망의 그늘에 가까웠다. 이와 달리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음에 비친 꿈의 세계는 또 다른 현실이었다. 어쩌면 그곳 역시 욕망이 몰고 온 결과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욕망은 자신의 내일을 알고 싶어 하고, 가급적 다가올 모든 위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고자 하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 투자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점쟁이의 말도 장인의 지혜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들로부터 얻은 믿음은 무엇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한사코 우리의 마음을 묶어둔다. 비록 모든 사람들이 예지력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스스로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파블로 네루다와 같이 통찰력으로 깨달음을 얻는 시인도 우연히 꿈속의 꿈을 한 여인과 공유하고 흥미로워하듯, 한번이라도 접하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이 빠져버리게 되는 것이 예지와 환상의 세계이다. 그러나 소설의 시작에서 프라우 프리다가 해일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것은 자신이 그토록 믿던 꿈의 예지를 모두가 불신하게 만드는 장치가 되었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면 아무도 죽지 않은 곳에서 왜 홀로 주검으로 발견되었을까.


그러나 소설의 결말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죽음조차 불확실한 것으로 남게 되고, 특히 포르투갈 대사의 입을 통해서도 그녀는 여전히 특이하고 흥미로운 존재로 묘사된다. 아마도 그녀는 죽음의 직전까지도 자신의 꿈이 현실에 닿아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녀의 말을 믿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녀의 꿈과 그 해석 그리고 신이한 삶에 대해서 관심을 놓지 못한다. 이 점은 일인칭 서술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그가 가장 집요하게 그녀가 남긴 꿈의 그림자를 따라 다녔을지 모른다.


<꿈을 빌려드립니다>의 허구는 우리의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직·간접적으로 자주 만나게 되는 꿈을 파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자신의 공약이 곧 국민의 꿈이라는 정치인들, 우리가 갖고 싶어하는 물건을 판매하는 상인들, 우리의 현실을 입맛대로 묘사하는 예술가들, 존재 자체가 꿈이 된 연예인들… 그들은 모두 자신의 꿈을 남에게 빌려주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언제나 그들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들에 쉽게 현혹된다. 그것들을 자신의 피와 땀으로 환전하더라도 우리는 그다지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많은 세월이 지나 위인이나 성인이 된 사람들은 우리 사고 속 신의 영역에서 존재한다. 심지어 그들의 말은 진리처럼 여겨져 현대 과학이 증명해낸 것조차 무의미하게 만든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힘이자 인간의 한계인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의 믿음은 무의식과 의식을 넘나들며 늘 우리를 두렵게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어떠한 형태로든지 꿈이 존재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맛보려는 가장 열렬한 신봉자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믿고 싶은 꿈의 상징만 떠올리며 살아가게 된다.


사진 stuant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