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비평‎ > ‎

가르칠 수 있는 용기 - 두려움의 극복

게시자: 허성우, 2016. 7. 2. 오후 9:40   [ 성우넷에 의해 업데이트됨(2016. 8. 29. 오후 7:49) ]



아, 절연되지 않기를,

그 어떤 사소한 간격에 의해서도 

별들의 법칙으로부터 절연되지 않기를

내면 ㅡ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광대무변한 하늘,

새들이 힘차게 솟구치고

귀향의 바람으로 출렁거리는

저 높고 그윽한 하늘


릴케가 <귀향>에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곳은 내면의 공간이다. 내 바람들이 포용되는 이상향이다. 이에 대해 T. S. 엘리엇은 이렇게 썼다. “우리는 우리가 출발한 곳에 다시 도착한다. 그리하여 그곳을 처음 본 것처럼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우리의 삶은 늘 동그라미를 그린다. 그러나 그 삶이 동그라미 안에 놓일 수도 있고 그 바깥에 내팽개쳐질 수도 있다. 우리가 만약 타자와 절연되지 않는다면 쉽게 그 안에 놓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영혼은 늘 두렵다. 절연의 공포 속에서 ‘미움, 눈물, 욕망’ 따위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고뇌한다.

 

이것은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속한 직장과 동료들 그리고 학생들로부터 절연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사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몸부림치는 것이다.

 

그러나 교사가 주변으로부터 절연 당하여 늘 두려움 속에 빠져 있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에게 돌아온다. 교사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학생이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마저 학생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내가 저 선생님을 믿어도 되는 것일까?’, ‘내가 가는 길이 올바른 곳인가?’, ‘아무도 내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수없이 되뇔 것이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엎드린 학생을 두고 파커는 생각했다. ‘저 학생은 정말 지옥에서 온 것일까’, ‘내가 부족해서 저 학생과 절연되지 않을 해답을 찾지 못한 것일까’ 파커의 이러한 고민은 교사라면 누구나가 겪게 되는 딜레마이다. 이러한 고민이 깊어질수록 교사와 학생은 자신감은 물론 자존감마저 잃게 될 것이고, 서로의 관계는 불신으로 인해 더욱 절연되고 말 것이 분명하다. 이에 대해 파커와 그의 워크숍에 참여한 교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것은 공포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 놓고 적절한 행동을 취한다면 돌파구가 열리게 된다. 그리고 내면의 동경에 귀를 기울이며 주변과 단절되지 않으려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 때때로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은 이처럼 간단한 것이다.”

 

“타자와의 만남에서 느끼는 어떤 공포는 우리가 그것을 잘 파악할 수만 있다면 우리를 살아남게 하고, 배우고 성장하게 한다. 낯선 것을 만날 때에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면서도 온몸에 열이 나 새롭게 열리는 것이다. ‘진정한 배움’이란 그런 것이다. 그것은 건전한 두려움이므로, 타자에 대한 공포를 넘어서서 존경으로 옮겨간다. 그런 것이 바탕이 되어야 훌륭한 교육이 가능해진다."

 

교사는 학부모와 학생을 이어주는 조정자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학생이 꿈과 절연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 스스로도 학생과 동료들로부터 절연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한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용기’이며, 그것을 가지는 방법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플 때마다 약을 삼키듯 두려움의 원인을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을 실천한다면 절연되지 않고 자신 있게 살아가는 자아를 곧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진 frank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