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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게시자: 허성우, 2016. 7. 2. 오후 10:23   [ 2016. 7. 2. 오후 10:23에 업데이트됨 ]


까마귀의 날갯짓마다 사라진 깃털 하나하나

샛노랗게 영근 귤 한 조각의 즙처럼 
빈 항아리 가득 환하게 담기네
밤의 옷을 입은 채 낮을 등진 하얀 토끼처럼
여인의 감추어진 눈물방울처럼 
희미해져 가는 길 
그것들은 뒷모습을 보이지 않네 
어머니의 품처럼 둥글게 자라 오르네
호수의 은빛비늘이 절망의 늪을 감싸듯이
살며시 번지네
긴 세월 속에 스며든 나그네의 숨결이 
흐릿한 얼굴에 피는 물결무늬 달무리처럼 
주렁주렁 미소 짓는 달맞이꽃처럼 
살금살금 번지네
이글루의 얼음지붕마다
풋사랑이 익어가는 푸른 사과마다
여린 풀잎마다 시린 가지마다 
그리움이 내린 작은 달 속 분화구들
천천히 자리 잡은 눈부처처럼
달빛에 잠긴 새소리처럼
하얗게 녹아내리네
하염없이 부서지지 않으면 내일로 이를 수 없는 정령들이 모여 
이 밤을 노래하네, 곱게 두드리네 
깨알 같은 숨소리들이 쌓아올린 쪽빛 피라미드 
그 한가운데를 열어낸 항아의 창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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