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시
올해 가을에도 바람은 나무의 손길을 두루 스쳐갔습니다 내 손바닥이 그것을 기억하지 못함은 그 느낌에 너무 익숙해진 까닭입니다 나는 낯익은 소중함들을 잊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내 눈물의 뜨거움마저 잊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커다란 도시에는 가을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늘보다 널따란 쓸쓸함이 내 눈을 감싸고는 매캐한 한숨을 떨어내고 있습니다 나는 어느새 이 소란함에 익숙해졌습니다 가을을 잃어버린 세상에 결국 길들여졌습니다
나는 지금 먼지 덮인 책장을 넘깁니다 메마른 글씨들이 싸늘한 바람에 쓸려갑니다 오래된 사진 속에서 한 사내가 외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의 그림자를 따르는 새들과 풀벌레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한적한 호숫가에 이르자 그는 오르골의 낡은 연주를 듣습니다
'자연의 속삭임을 들어보라 그 속에서는 모든 것이 흘러가네 멈추는 것은 오직 내 심장의 소리일 뿐 재잘대던 별빛들이 낙엽처럼 흩날리네 잃은 것은 내 청춘의 노래일 뿐 지난 꿈들은 모두 쏟아져 내려 오늘의 물결 속에서 일렁이네'
이미지 <Walden Pond> sass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