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까마귀의 날갯짓마다 사라진 깃털 하나하나

샛노랗게 영근 귤 한 조각의 즙처럼

빈 항아리 가득 환하게 담기네

밤의 옷을 입은 채 낮을 등진 하얀 토끼처럼

여인의 감추어진 눈물방울처럼

희미해져 가는 길

그것들은 뒷모습을 보이지 않네

어머니의 품처럼 둥글게 자라 오르네

호수의 은빛비늘이 절망의 늪을 감싸듯이

살며시 번지네

긴 세월 속에 스며든 나그네의 숨결이

흐릿한 얼굴에 피는 물결무늬 달무리처럼

주렁주렁 미소 짓는 달맞이꽃처럼

살금살금 번지네

이글루의 얼음지붕마다

풋사랑이 익어가는 푸른 사과마다

여린 풀잎마다 시린 가지마다

그리움이 내린 작은 달 속 분화구들

천천히 자리 잡은 눈부처처럼

달빛에 잠긴 새소리처럼

하얗게 녹아내리네

하염없이 부서지지 않으면 내일로 이를 수 없는 정령들이 모여

이 밤을 노래하네, 곱게 두드리네

깨알 같은 숨소리들이 쌓아올린 쪽빛 피라미드

그 한가운데를 열어낸 항아의 창가에서

Photo by SLEEC Phot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