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Post date: Jul 3, 2016 4:32:36 AM

에드워드 카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였다.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고 역사적 사실들은 과거의 일부인데, 역사 서술은 이 둘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과거를 보는 새로운 눈이 길러져야 미래에 잠식되어 가는 현재의 어디쯤에 우리가 서 있는지 인식할 수 있다.


시대가 바뀌면 과거는 전과 달리 해석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저널리스트 스콧트는 ‘사실은 신성하나 의견은 자유’라고 하였다. 그러나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도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보수와 진보의 정치관에 따라 과거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올바른 역사는 무엇일까? 우리가 교과서로 배운 역사는 과연 사실에 부합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배러클루 교수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우리가 책에서 읽는 역사는 사실을 토대로 한 것이긴 하지만 엄격히 말한다면 결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일련의 인정된 판단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당 내지는 다수당의 관점에 따라 역사교과서의 내용은 수도 없이 바뀌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리튼 스트래치는 역사가가 무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무지는 단순화시키고 명확하게 추려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사실만 남게 되고 비역사적 사실들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역사에 있어 우연이라는 것은 사실을 굴절시킨다. 즉 역사 법칙은 우연의 자연 도태를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다. 톨스토이 역시 비합리적인 사건, 우리가 이해 못하는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숙명론에 의거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즉 우연이란 우리가 설명하지 못하는 사건들에 대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 시대의 우리 언론들은 너무도 우연에 근거하여 기사를 쓴다. 더 나아가 추측한 우연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우연이란 이해 못하는 사건뿐만 아니라 서술자가 그렇게 믿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 행위는 그럴 법한 소설을 쓰는 것이나 다름없다. 주관주의에 빠지게 되면 온갖 허구의 살을 갖다 붙여 오히려 사실을 은폐하게 된다.


따라서 역사가에게는 부적절한 내용은 버리고 합리적인 해석 속에서 인과적으로 서술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른바 ‘클레오파트라의 코’는 역사적 결과에 미친 영향을 떠나 합리적인 원인으로 기술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어떠한 인물의 언행을 기술할 때에도 합리적 인과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리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다양한 원인 중 하나만을 채택해 합리적이라고 여기고 나머지는 모두 비합리적이라 치부하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전통이란 과거의 관습과 교훈을 미래에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의 기록이 보존되기 시작한 것도 미래 세대의 복지를 위함이다. 이렇듯 역사적 사고는 언제나 목적론적인 것이다.(호이징가) 즉 역사가는 ‘왜’라고 묻는 순간 ‘어디로’를 생각하게 된다. 즉 역사는 진보적인 것이고, 획득된 자산이며, 후세를 위한 의무이다.


괴테는 몰락에 처한 시대에는 모든 경향은 주관적인 것이 되며, 이와 반대로 모든 일이 새 시대를 향해서 결실을 맺는 시기에는 모든 경향이 객관적인 것이 된다고 하였다. 즉 성공한 미래에서는 역사가 옳은 방향으로 ─ 고등한 상태로/ 건설적으로 ─ 나아갔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때문에 승자는 전쟁을 승리의 발판으로 여기지만, 대량학살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긴 시간 속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다. 그에 따라 역사도 끊임없이 움직일 것이다.


사진 ell br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