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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서

게시자: 성우넷, 2019. 2. 21. 오전 9:35   [ 2019. 3. 4. 오후 7:04에 업데이트됨 ]



1

 

그대여, 삶을 스치는 푸른 시절을 아는가

그때 비로소 사랑을 느끼리니

새소리와 파도의 넘실거림을 마음껏 즐기어라

꽃을 건네는 일이 전혀 부끄럽지 않고

꿈을 싹 틔우는 일이 무척 자랑스러우리라

그러니 부디 그 마음을 가꾸어 가기를

혼자만의 방에 존재의 숨소리를 가두지 말기를

닫힌 문에 기대어 외로이 병들지 않기를

사랑의 햇살이 창가에 드는 동안에는

시의 줄기들이 청춘의 숲을 이루게 되리니

 

 

2

 

그대가 누군가에게 진실을 바란다면

거짓의 누더기를 벗어던져야 하리

가끔 그대의 입술로 새어나오는

민들레 씨앗보다 더 가벼이 흩날리는

전혀 웃음도 눈물도 얻을 수 없는

그 헛된 이야기들을 멈추어야 하리

악마들도 내내 엿듣고 있다가

사랑을 집어삼킨 후 불행을 선물하리니

그대가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면

제발 이슬처럼 말갛게 속삭여주기를

 

 

3

 

그 작은 입술에서 온갖 말들이 쏟아지나

오직 크로노스만이 그것을 주워 담을 수 있네

그러니 그대가 그를 만날 수 없다면

현란한 말솜씨로 그를 유혹할 수 없다면

한 마디의 말에도 고민을 거듭하기를

그대의 말에는 여러 가지 색깔이 있어

듣는 이의 마음을 물들이게 되리니

사랑할수록 고운 색의 물감을 선택하기를

아름다운 색도 잘못 섞이면 잿빛이 되듯

그대의 말도 소나기구름처럼 떠돌 수 있으니

 

 

4

 

사랑을 담보로 그 사람을 소유할 수 없으리

어떤 부자 어떤 권력자도 그 마음을 얻지 못하리

겨우 그 끄트머리라도 붙들어 보겠다면

그대가 먼저 온 마음을 담아 시를 써야 하리

긴 밤을 접어 뜨거운 눈물에 녹인 다음

그 잉크로 긴 편지를 써야 하리

그래도 그대는 소유할 수 없으리, 그 마음을

그리고 그 마음의 대가조차 얻지 못하리

참사랑은 무지개처럼 쥘 수 없는 것

애써 쥐어보려 해도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 것

 

 

5

 

바람을 등졌을 때 발걸음이 가벼움은

그대가 자연의 순리를 따랐기 때문이네

참사랑도 그 교향곡 속에 존재하지

만약 그대만이 엇박자로 온종일 떠든다면

그대 곁에는 아무 청중도 없을 테니

흔들리는 이파리와 풀잎처럼 춤추기를

부서지는 파도와 빗방울처럼 노래하기를

그대가 별빛의 반짝임을 시기한다면

다가올 나날에는 먹구름만 가득하리니

나비처럼 저 하늘로 날아오르기를

 

 

6

 

불은 물과 어울릴 수 없으리니

그대와 다른 이에게 손 내밀지 마라

그럼에도 함께하려 한다면

그대가 불일 때는 기꺼이 희생하고

그대가 물일 때는 감사해야 하리니

그 사람의 눈빛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라

물과 물이 만났다면 멀리 흘러가고

불과 불이 만났다면 활활 타오르리라

시나브로 삶의 종착역이 다가오리니

그곳에서 노을빛 만찬을 들어라

 

 

7

 

황혼을 맞을 때까지 마주하려거든

베일로 가린 채 눈빛으로 미소 짓기를

햇살을 품은 달이 한밤중에 빛나는 것처럼

이슬이 그늘에서 비상을 꿈꾸는 것처럼

가까이 자란 나무들이 서로 상처를 주듯

사랑에도 알맞은 거리가 필요하거늘

오랫동안 고운 손을 붙들려거든

서서히 그대의 베일을 걷어내기를

늦거나 서두르지 않는 시곗바늘처럼

이따금 귓가를 파고드는 파도 소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