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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호숫가에서 깨달음을 낚다

게시자: 성우넷, 2019. 3. 2. 오전 4:59   [ 2019. 3. 27. 오후 10:26에 업데이트됨 ]


소로는 생전에 명성을 얻거나 부를 탐한 적이 없다. 그는 하버드 대학을 나와서도 월든 호숫가에서 통나무집을 짓고 농사지은 일을 가장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겼다. 그는 자연을 소유하지 않고 그것의 일부로 살아가고자 했다.

이와 달리 현대인들은 숲을 가로지르는 길을 내고 그 주변을 개발하는 데에만 급급해왔다. 소로가 말한 숲의 경제와는 정반대의 길로 걸어온 것이다. 숲은 그대로 두어도 생명을 먹여 살리는 보배로운 장소지만, 인간이 그곳의 나무를 깎아내고 동물들을 내몰면서 온전한 숲은 대부분 사라지게 되었다.

그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야생사과의 향과 맛을 으뜸으로 꼽았다. 야생에서 사과나무가 자라는 동안 햇살, 바람, 흙 등이 그 지역만의 독특한 맛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 맛은 사람들이 제한된 조건 속에서 만들어낸 획일화된 사과맛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인류가 숲을 밀어내며 잃어버린 것은 야생사과뿐만이 아니다. 꿀벌의 터전이 사라지자 열매를 꽃피울 길이 없어짐을 걱정하게 되었고, 먼 미래에는 사과 대신 벌레를 먹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소로는 무소유와 자연 친화를 추구하면서 국가주의의 폐해를 경계했다. 국가가 개인이 추구하는 다양성을 무시하고 특정하고 옳지 못한 일을 하기 위해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반대했던 것이다. 당시 미국이 자연을 훼손하거나 약소국 식민지화를 위해 전쟁에 몰두할 즈음, 소로는 인두세를 거부하며 불복종의 권리를 행사했다.

그는 이러한 생각들을 마을 사람들에게 전하였으며, 종종 글로 남겼다. 그래서 오늘날의 우리들도 그의 생각에 공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당시 자신의 글로 유명세를 얻으려 하지도 않았다. 단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했다.

이를테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걸어서 가는 것과 기차를 이용하는 것 중 무엇이 값싼 것인지 견주어봤을 때, 그는 걷는 것이라고 단호히 말하였다. 기차 타는 비용을 벌기 위해서는 오랜 학창 시절을 거쳐야 하고, 그렇게 쌓은 역량을 바탕으로 남 밑에서 노동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걷는 것은 길어도 한 달이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걷는 동안 여유 있게 주변을 둘러보며 많은 생각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그동안 우리가 추구했던 삶이 정말 옳은 길이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자연에서 주어진 것들을 공정하게 나누는 일보다, 가진 자들을 위해 노동하며 전체가 획일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을 과연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월든 호수의 깊이를 재기 위해 실에 돌을 매달았다.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어쩌면 우리는 그런 방법조차 떠올리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모른다. 또 그는 낚시를 한 후 물고기들을 다시 살려주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들의 생명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다른 생명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소로가 눈감았던 날,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미소 지었다고 한다. 비록 45세의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천국, ‘월든을 바라보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새들이 아침을 노래하고 햇살이 콩깍지를 빚어내던 월든 호숫가에서, 그는 한 소나무가 나무꾼에 의해 죽어버린 것을 깊이 슬퍼했다. 다람쥐의 집, 새들의 보금자리가 그의 곁에서 사라질 때, 그도 그것들과 함께 그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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